밀양 손씨 의병장 손승경의 충효사상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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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인터넷신문 | 2026-04-29 21:21 |

밀양손씨 목사공파의 후손들인 정읍의 제학공파, 초은공파 손한선 회장은 지난 3월 12일 (음력) 손홍규 전임회장과 손익선 총무. 손문국 감사를 대동하고 진안 영모사를 찾이 시향을 모셨다. 진안 영모사는 이산묘로 불리는 사당으로 단군, 태조 이성계, 세종대왕. 고종등 왕과 조선시대의 충신 명현 41위를 모시는 사당으로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장을 참여한 손승경 할아버지가 함께 모셔져 있어 밀양손씨 집안으로써는 감회가 남달라진다는 것이다,
손승경의 본관은 밀양. 자는 사오, 호는 초은(楚隱). 부제학을 지낸 손비장의 현손이며, 아버지는 한림 손홍적이다. 일재(一齋) 이항(李恒)과 백고(伯顧) 기효간(奇孝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선조 연간에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을사사화 때 평안도 위원(渭源)현 자강도 위원군에 유배되어 죽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출사하지 않고 정읍의 초산(楚山)으로 이사하여 은거하면서 후배 양성에 주력하였다,
초은 손승경(孫承憬)[1540~1592]은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들이 전주로 침략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경기전(慶基殿) 사적 제339호의 태조(太祖) 어진(御眞)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가솔들을 동원하여 정읍 내장산의 용굴암(龍窟庵)[전라북도 기념물 제130호]에 옮겨 보존하였다. 정읍시에서는 내장산 입구에 입간판으로 공의 업적으로 기록하여 수 많은 관광객들이 볼수 있도록 정읍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후 손승경은 왜군들이 금산의 이치와 진안의 웅치로 침략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의병 700명을 모집하여 진안의 웅치로 가서 침략을 막았으며 중봉(重峰) 조헌(趙憲)이 승병 영규(靈圭)와 힘을 합해 금산에서 왜군을 맞이하여 싸우다가 순절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가동(家童)과 의병을 이끌고 양성현 (경기도 안성)으로 달려갔고,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때 선조가 공을 치하였다는 점이 조선왕조실록이 나타나 있다.

제학공파 손한선회장은 그동안 우리 집안에서는 손승경할아버지의 업적에 대해서 다시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고향에서도 지내지 않는 시향행사를 진안군에서 이름없는 의병장의 기개를 살리고 충효사상을 고취하고자 매년 열리는 행사에 관련 집안들이 참석하고 있어 밀양손씨 문중에서도 참여하여 후손들에게 선조의 충효사상을 전하고자 행사에 참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손승경 공의 전쟁 참여에 감복한 증손자 37대손 손봉조는 당시에 봉자 항렬 자손들이 정읍 세거지는 떠나 새로운 세거지를 정하는데 할아버지가 전쟁에 참여하였던 진안의 웅치에 터를 잡고 손승경의 무훈을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이에 손봉조 할아버지는 벼슬을 하지않고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웅치 전투장을 생활 터전으로 만들어웅치에 200세대가 세거하는 명문 세가로 발전하였다.
37대손 손봉조의 8대- 10대 후손들은 웅치 전장터에 지덕제라는 사당을 만들어 공의 충효사상의 유훈을 실천하는 것으로 지역에 봉사를 하고 있으며 할아버지 손승경과 함께 전쟁 참여로 나라를 지킨 선열들을 나라에서 인정하는 것으로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 (지번: 동촌리 78번지)에 있는 이산묘(駬山廟)에 배향되어 41여 신위들과 함께 손승경 공의 업적을 음력 3월12일 시향을 지내면서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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