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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손씨 돈암(遯巖)공 휘 기남(起南)파 춘향제 봉행 및 정기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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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4-27 22:28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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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7일 용인뉴스 기사]
밀양손씨 돈암(遯巖)공 휘 기남(起南)파 춘향제 봉행 및 정기총회
 
 
 
 
돈암공실기(遯巖公實記) 책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admin_062649.png 손남호 2026-04-2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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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9일 일요일 10시30분 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 금양리에 소재한 숭덕사(崇德祠)에서 돈암공파종친회(회장 손병기)주관으로 춘향사를 성황리에 봉행하였다. 이날 춘향제는 초헌관 손현국, 아헌관 손우섭, 종헌관 손재일, 이 각각 맡았으며, 그리고 축관에는 손원식, 우집사 손헌덕, 좌집사손영회, 찬인 손학진, 집례 손기준이 각각 맡아 파조의 음덕을 기려 세계유산을 보유한 명문세가의 시향제가 종원들의 참여속에 엄숙하게 봉행하였다.

[밀양손씨 돈암(遯巖)공 휘 기남(起南) 사적(事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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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공(遯巖公) 휘 기남(起南)은 1539년(중종) 기해(己亥)생으로 字는 문선(文善)이요 호는 돈암(遯巖)이다. 선조39년(1606년 丙午) 6월 16일, 68세 일기(一期)로 졸(卒)하였다. 묘는 군위군 의흥면 금양리 대산69 오좌(午坐) 석물(상석. 비석. 사자석. 석등. 망두)을 갖추었으며, 배(配) 숙부인 파평윤씨의 묘는 대산 넘어 양지쪽 해좌(亥坐) 상석이 있다.

선조25년(1592년 壬辰) 4월 21일 公이 54세 때 임란으로 의흥이 함락될 무렵 향교 “오성위판”을 선암산 성재암으로 옮기고. 8년동안 모시고 용연정에서 2년반, 십여년 동안 매월 삭망 때 분향했으며, 어버이는 조림산에 초막을 지어 모시고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선조32년(1599년 己亥) 수의사(繡衣使) 민후홍(閔候弘)의 장계(狀啓)에 의해 복호 4결을 받았으나 그중 2결은 다시 나라에 바침으로 전쟁후 백성의 구휼미로 사용토록하는등 백성에 대한 애중이 강한 신하로 임금에 비쳐짐과 동시에 선조34년(1601년 辛丑)10월4일 처음 향교에 오성위판 옮기었으나 돈암선생이 돌아가신후 35년후 인조19년(1641년 辛巳) 현 향교에 오성위판 옮기게 되었다.

묘는 군위군 의흥면 금양리 대산69 오좌 석물을 갖춤(상석. 비석. 사자석. 석등. 망두) 광무 원년(1897년정유)7월 의흥군수 신태철(申泰哲)에 의해 숭덕사(崇德祠) 모성당(慕聖堂)창건. 돈암공을 불천지위로(不遷之位)로 모시고 있으며, 1915년 公의후손들이 “돈암 손선생 유허비각”을 마을에 세워 충효정신을 기리고 있다.

모성효의비각(慕聖效義碑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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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의 휘는 기남(起南)이요 자는 문선(文善)이고, 성은 손씨이며 관향은 밀양이다. 신라국효 손순(孫順)을 시조로 7세손 고려건국벽상공신 휘 긍훈(兢訓) 광리군 의 후손으로서 이조 중종34년 서기1539년 유서깊은이곳 의흥 금양에서 출생하여 일찍부터 학문과 충효에 큰 뜻을 품었으며, 성품이 강개하여 인의를 겸비한 유현이였다.

선조25년(1592년)임진왜란 시 강토가 왜구들의 만행으로 짓밟힐 때 분연히 몸을날려 향교에 들어가 몸소 오성위패를 지고 선암산 바위굴에 권안하고 어버이를 조림산 초막에모셨는데 그 효성이 지극하여 범이 노루를 잡아와서 어버이 반찬으로 바치고 밤새 위패 권안소를 지킬 때는 범이 동행 호위하였다.

양 왜란이 끝나자 의흥향교는 왜란에 불탓고 용연위에 초가 3간을 지어 그 곳에 위패를 모셨는데 지나가던 암행어사 민후홍(閔侯弘)이 전후 사실을 선조임금께 장계를 올리니 선조32년(서기1599년)임금께서 공을 불러 효성이 뛰어나고 성현을 섬긴 몫으로 복호 4결을 즉석에서 내리시니공께서 복호4결은 신에게 너무 과하니 2결은 돌려 바치겠습나다. 하니 임금께서 공에게 너는 나라에는 충신이요,부모에게는 효자이며 성현에게는 어진 제자가 되었다.면서 어사주 한 잔 내리셨다.

공은 그리고 7년 후 선조39년(서기1606년)에 68세를 일기로 세상을떠나셨고 공의 위패는 화계서원에 모셔졌다가 서원 철폐후 숭덕사에 불천위로 모셔져있다. 그후 선조40년(서기1607년)에는 공에게 통정대부 성균관대사성 사재감첨정의 품계와 관직이 증직되었고, 곧이어 정문입사령(旌門立祠令)이 내려 숙종44년(서기1718년 무술) 의흥군수 조하성(曺夏盛) 향교 앞 언덕에 모성효의각을 세움. 두차례의 중건을거쳐 오늘에이르렀다. 이와같이 란(亂)중에도 사선을넘어 이뤄진 공의 독행(篤行)이 오늘을사는 우리 후세인들의 충.효.유(儒)의 정신함양에 산 교육장 으로서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서기 2002년 중추. 義 興 鄕 校 儒林

모성당과 숭덕사

영조2년(1726년 임오)에 전적(典籍) 박현보(朴顯輔)가 “화계서원”을 창건하였으나 고종5년(1868년 무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자 돈암공후손들이 건축물의 자재를 각각 나누어 보관하였다. 광무원년(1897년 정유)7월 의흥군수 신태철(申泰哲)모성당(慕聖堂) 숭덕사(崇德祠) 창건, 불천지위로 모시고 있으며 1915년 후손들 “돈암 손선생 유허비각”을 마을에 세웠다.

돈암공실기(遯巖公實記) 책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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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미) 10월 10일 한국진흥원이 보존 관리하는 유교책판(돈암실기 목판)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됨에 따라 함께 등재되었다. 돈암공 실기 목판 발견된 23장 중 21장은 한국진흥원에 보존하고 2장은 군위군 유물관에 진열 보존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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