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효공 손순의 46세 손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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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휘(諱) 기양(孫起陽)공은 성리학자로 號는 오한(聱漢)이고 字는 경징(景徵)이다. 약관의 나이로 백가(百家)의 책을 탐독하여 학식이 매우 깊으신 분이다. 1585년(선조 18)에 사마시에 합격한 뒤 1588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여러 요직 전적(典籍), 울주판관, 영천군수, 창원부사 등을 거쳐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분투하셨다. 1592년 성현찰방(省峴察訪)이 되어 중대를 모아 역마(驛馬)를 적절히 배치하면서 전쟁 수행에 만전을 기하였다. 특히 석골사(石骨寺)에서 대승하였다. 1613년(광해 5년) 계축년에 사헌부 장령과 사간원 사간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616년 병진년에 통정대부로 승계(陞階)되어 상주목사를 배수 받았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하향하여 학구에 몰두하며 많은 시문(詩文)과 저술을 남기셨다.
37세손 화중(華仲) 공(公)은 휘 홍적의 5세손으로 성품이 충직하고 정의감이 강하여 어려서부터 효우의 정신이 남달랐다. 20세의 약관(若冠)으로 동학에 입도(入道)하여 고창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대접주가 되어 뛰어난 혁명지도자가 된다. 전봉준, 김개남과 함께 초기 동학농민혁명운동을 주도한 3대 지도자중의 한분이다
39세손 손호(浩)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7년간 고향인 밀양군 산내면에서 서기로 재직하셨다. 그뒤 만주로 이주하여 1925년에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인 신민부에 가담하여 활동하셨고, 1927년에 신민부 중앙위원장 김좌진의 지령을 받고 동지 이병묵 등과 함께 권총과 폭탄 등을 가지고 국내에 잠입 대구 지방에서 활약하셨다. 일제고관과 친일분자의 암살, 일제의 주요건물 폭파,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하며, 동지 수명을 규합한 후 경상남북도에서 활약하다가 1928년 5월 대구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9년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받고 복역중 1936년 8월 23일 순국 하셨다.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셨다.
문효공 41세손 병선(秉善)은 일제강점기 때,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 및 국내외 연락 업무를 수행한 독립운동가 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3.1 운동 때 칠곡군 일대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고, 1920년에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북만주로 망명한 뒤 독립운동자금을 마련을 위해 귀국해 임시정부의 특파원 허영원과 함께 경상북도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했다. 자금 2천원을 모은 뒤 상해로 탈출하려다 일제 경찰의 체포 되었고, 1921년 5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5년 군자금 조달을 위하여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盧伯麟)의 자금협조를 요청하는 지령서를 전달받고 이를 인쇄하여 동지들에게 배포하면서 더 많은 군자금을 임시정부로 조달하기 위하여 노력하다가 다시 붙잡혔다.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셨다.
문효공 44세손 휘(諱) 병희(秉熙)는 호(號)가 의암(義菴)이다. 조선 말기 동학과 천도교의 지도자로 갑오 동학혁명에 수천명의 교도를 동원하여 공격에 앞장섰으며 동학혁명을 지도할 때에 특히 족제, 낙회와 여옥 등 종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1919년의 3.1 운동의 주역인 천도교 지도자로 기미독립선언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만해 한용운 등과 함께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 중 한 분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의 장인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나라와 가문을 위해 헌신하신 훌륭한 분이 많이 계시지만 생략한다. 밀양손씨 가문은 조선시대 문신보다 무신을 많이 배출했는데, 문과급제자 38명, 무과급제자 125명으로 학문, 관직, 예술, 독립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가문을 빛냈다. 밀양손씨 족보에는 가족의 전통과 관습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어, 후손들이 가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족보를 통해 가문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한편 손남호 밀양손씨중앙종친회장은 밀양손씨 족보의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를 위해서 동분서주 노력하며,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는 역사발굴을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이고 종친들과 각별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임원들과 함께 25년11월29일 정읍시 구룡동소재 초은 손승경 공의 제각에서 시향제에 참석해 공의 업적을 기리고, 문중발전에 공로가 인정된 손한선, 손홍규, 손중기 3명에 대해서 표창을 하였다.
2025. 12. 10 峙谷 손 홍 균
댓글목록
손교영님의 댓글
게시판에 글 올려주셔서 손홍균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선조님에 대한 사적 설명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